엉클 샘은 세속주의자는 아니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나? 어쨌든 그는 엉클 샘이고, 신앙은 화신에 필수적이었다. 신앙이 없으면 화신은 잘되지 못할 것이다. 아이젠하워가 즐겨 표현했듯이 “종교적 신앙이 깊이 느껴지면 그게 뭐든 나는 상관하지 않는다”. 사실이다, 언약의 문자에 따르면 누구나 봉사할 수 있지만 반면에 엉클 샘은 분명히 유대인, 이슬람교도, 힌두교도, 불교도, 부두교도, 로마교도를 썩 좋아하지 않았다. 그가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어하는 이들이 있다면, 에즈라 벤슨의 모르몬교, 여기 이 땅에서 주로 그리고 여기가 우선된, 크고 자란, 별스러운, 복음주의적인 그리고 근본주의적 종파들, 그리스도 재림교인, 셰이커교, 여호와의 증인, 기독과학 신봉자, 완고한 침례교인, 그리스도의 교회 교인, 사중복음 교회 교인… 그렇다, 그리고 퀘이커 교도들이었다. 그래서 나는 잭 케네디의 무지몽매와 신성 모독에 놀라지 않았으며, 그들과 마주했을 때 언제나 그랬듯이 나는 침묵을 지켰다. 어떤 사람은 높은 신분으로 태어나지만 어떤 사람은 그렇지 않았다. 말귀 느린 사람을 돕는 일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 특히 케네디 같은 부유한 아이비리그 브라만은 —나는 그 사람들 모두를 몹시 싫어했다. 개인적으로가 아니라, 공정하게 플레이하지 않기 때문에, 지원을 든든히 받아 유리한 출발선에 서서 아메리칸 드림을 오염시키기 때문이었다. 젠장, 그들이 우리처럼 페니 캔디를 팔고 백만장자를 구출할 수 없다면 고꾸라 뒈졌을 텐데. 나는 항상 엉클 샘도 그런 관점이리라고, 통나무 오두막 출발선의 대상들에 열광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 갑자기 변절을 보다니. 이는 단지 한 가지 의미뿐이었다. 기차가 천천히 출발하자 비참하게 자리 속으로 주저앉아 구겨진 옷 아래 몸을 웅크리고, 고대의 분노 속에 솟아오르는 아버지들의 신내를 맡았다. 좋은 교황주의자는 죽은 교황주의자가 유일하다. 푸. 새 셔츠와 데오도란트가 절실했고, 시바보다 냄새가 더 심했지만 될 대로 되라지, 다 관심 없었다.
기차는 축제 분위기에 휩싸인 사람들로 차오르기 시작했다. 노래를 부르고, 휴대용 플라스크 코르크를 풀고, 마우스 하프와 카드패를 꺼내고, 시가에 불을 붙이고 … 아무도 내 옆에 와서 앉지 않았다. 나는 전혀 개의치 않았지만, 익명성에 대한 열정은 내게는 장난 아니었다. 스쿨 버스에서, 합창단 연습에서, 축구 경기 벤치에서, 가족 소풍에서, 나는 항상 따로 자리를 잡았고, 나는 원래 론 레인저(Lone Ranger)였고 그런 식으로 원했지만 여전히 그 함축된 의미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것은 마치 내가 험프티덤프니(낙선이 뻔한 후보자)로 내세운 사람이라 모두가 이 냄새를 맡고서는. 잘들 알아서 그들은 오염되지 않으려고 피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자금 위기 이후 내가 느꼈던 것과 똑같은 완전한 고립감이었다. 아마도 체커스가 나에게 광견병 같은 것을 주기라도 한 것처럼, 마치 지난 12년은 없었던 일이고, 나는 OPA 소속으로 워싱턴으로 돌아와, 대도시 유대인과 예일대 뉴딜 정책지지자들에게 업신여김을 받는 것 같았다. 내가 죽일 수 있을까? 그 정도까지 되면 죽일 수 있을까? 로젠버그처럼 쉬운 일은 아니지만 여기 이 군중이… 방해한다면…? 왜 안 돼? 살인은 다른 어떤 것과 마찬가지로 의미가 없었다. 유일한 질문은 당신이 자신이 죽을 위험을 감수할지 여부였다 — 그렇다면야 얼른 나서 시도해 봐야 할 또 다른 이유가 될 수 있었다. 내가 자살충동이 있는 건 아니었다. 평생 죽는 것이 두려웠고 여전히 두려웠다. 하지만 나는 끊임없이 이를 직면해야 했다. “저 떼 지은 검은 무리,“ 이름을 붙이지 않는다는 가정하에서만 저것으로부터 나는 에너지를 얻었다. 그 위협이 몸이 얼어붙지만, 그것이 나를 위협했을 때만큼 활력이 넘치는 적도 없었다. 이 때문에 단순히 살아남는 일이 내 삶의 중심 원칙이 되었다. 그것은 내 얼굴을 주조했다. 그것은 나를 무모하게 만들었다. 나는 그것에 뛰어들었다가 반대편으로 계속해서 다시 빠져나가고 싶었다. 그것은 나에게 자아가, 비록 아무것도 아니더라도, 전부라는 것을 가르쳐주었다. 그리고 그것이 로스앤젤레스에서 아버지가 우리 형제들을 닥터 레이더의 부흥회에 데리고 가셨던 날 밤, 나를 통로로 이끌었다. 대단한 밤이다! 여긴 조용하고 합리적인 휘티어의 친우 집회소가 아니로구나. 이것이 빌어먹을 진실이다. 기막히게 훌륭하고 핵심적이다. 여기에는 연극처럼 가장된 경건함은 없었고, ‘기쁘다 구주 오셨네’ 없이, 끔찍한 선택을 하여야 하였고, 제3의 대안도 없었다. 레이더 박사는 한 가지 사실을 주지시켰다. 진실은 당신을 편안하게 만들지 않는다고. 내 눈이 번쩍 뜨였고, 이런 준비가 되었다. 바로 전날 고등학교에 입학했고 피를 흘리고 싶다! 그날 밤 우리는 수백 명의 다른 사람들과 함께 그리스도와 기독교 봉사에 대한 개인적인 헌신에 합류했다. 아니면 아마도 이것은 헌신보다 더 깊은 변태를 위한 공식이었을 것이다. 울었던 기억이 난다. 아버지가 얼마나 취약해 보였는지. 예수님이 죽음에서 걸어 나와 진보를 향해 가는 일종의 자애로운 빛 구름처럼 보였다. 진정한 자유를 향하여. 나는 믿었다. 오직 미국에서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 생각했다
우리는 속도를 높이며 볼티모어 교외를 빠져나왔다. 기차가 나를 뉴욕으로 몰고 가는 것을 느끼며 나는 로스앤젤레스에서 그날 밤을 회상하면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지금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 상기했다. 통로를 내려가기 시작하면 되돌릴 수 없다. 사건의 흐름은 그 자체에 엄청난 힘과 가속도를 지니고 있다. 이는 항상 진실이다. 한 사람이 리더십 면에서 중요한 위치에 오르면 - 예를 들어, 나와 같은 위치에서 — 많은 큰 파도를 일으킬 수 있지만 강 물길의 방향을 완전히 바꿀 수는 없다. 내 주변의 사람들이 “가서 도끼 가져와” 포크송과 “차 두 잔”을 부르고, “올드 스모키 꼭대기에서,” 전기의자를 연상시키기 위해 가사를 다소 바꾸어 부르고 있었다. 나는 거기에 가담하지 않았고, 점점 그들의 일부라는 느낌이 줄어들었다. 나는 혼자 앉아 홈버그와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창가에 웅크리고 앉아 취임식을, 돌난간 너머로 그 모든 낯선 사람들을 내다보던 때를 떠올렸다. 장군의 거들먹 연설이 끝난 후, 그들은 모두 폭발적으로 휘파람을 불었다. 늑대의 휘파람처럼 짧게 올렸다 낮게 내뱉는 게 마치 그들이 환호하는 대상이 아이젠하워의 말이 아니라 아이젠하워의 다리인 것처럼 들렸다. 일부 사람들도 박수 쳤지만, 그 차가운 바람 속에서 가장 잘 들리는 것은 날카롭게 울리는 야만적인 휘파람 소리였다. 대부분 사람들은 완전히 바보들로구나 이전부터 알고 있었고, 그래서 앞서가는 일이 너무 쉬웠고, 저 밖에는 심각한 경쟁은 아예 없었다…
우리는 이제 탁 트인 시골을 질주하고 있었고, 뉴욕이 점점 가까워지자 흥분이 고조되는 것 같았다. 공기는 연기, 노래, 치열한 대화, 술 냄새로 가득 차서 나는 구역질이 나기 시작했다. 아무도 나에게 돌려 마시고 있던 술을 권하지 않았지만, 그게 차라리 다행이었다. 나는 옷깃을 풀고 고개를 뒤로 젖혔다. 이크, 지금 딱 내게 필요한 일이 마침, 구역질이었는데. 토할 것이 없다는 걸 알았다. “공허하다, 공허하다. 로젠버그 사건처럼.” 나는 점심을 또 놓쳤고, 아침 식사 이후로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아침에 무엇을 먹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다지 많지는 않았다 확신했다. 빌어먹을 콘비프 해시도 없었고, 먹고 싶었던 것도 아무것도 없었다. 아침 식사에 대해 내가 기억나는 일이라고는 딸 아이들을 꾸짖고 공연히 패트에게 비난한 일뿐이었다. 패트가 진짜 욕먹을 만했었다 해도 나는 후회했다. 그녀는 더 이상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젠장. 나는 해야 할 이런 큰일을 앞두고 있었는데 그녀는 전혀 신경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녀는 이미 흥미를 잃었다. 그녀는 정치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녀가 좋아하지 않는 것은 바로 나였다! 내가 정말 처져있을 때는 결코 그녀에게 의지할 수가 없었다. 2년 전 헬렌 더글러스를 상대로 한 선거일을 예를 들어보자. 나는 패배할 것이라고 확신했고, 내 정치 경력이 모두 끝났다는 것을 알았지만 이것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 마치 별일 아닌 것처럼 꾸며야만 했다. 그래서 나는 우리 모두 해변에 가자고 결정했다. 아이들까지도, 모두 가자고 보챘다. 실은 그날 날씨는 끔찍했다. 춥고 우중충한 날씨에, 아주 매서운 연안 바다의 바람이 세차게 불어왔다. 바람은 나의 최악의 의혹을 확증하는 것만 같았고 나는 그 처벌을 한껏 즐겼다. 소녀들은 울면서 집에 가고 싶어 했다. 나는 그들을 때리고 싶었다. 대신 나는 미소를 지으며 가서 빌어먹을 모래나 파고 닥치고 있으라고 말했다. 하지만 최악은 패트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따로 담요를 꽁꽁 싸매고 모래 위에 앉아 내가 마침내 포기하고 가족 모두 집으로 데려갈 때까지, 부루퉁하고 잔소리로 사람을 긁어대었다. 너무 넌더리가 나서 그냥 도로변에 차를 세우고 가족들을 버리고 혼자 영화를 보러 가버렸다. 그리고 지금, 맙소사, 그녀는 내가 침대에서 몸부림친다고, 한밤중에 벌떡 일어나 메모를 한다고, 갑자기 두려움이나 혹은 열정에 휩싸인 내가 그녀를 깨운다고, 아예 공개적으로 불평하기까지 했다. 나는 그녀를 넘버 투 레이디로 만들었는데, 이 나라에서 그녀는 그런 대단한 자리를 그저 공짜로 얻었다고 생각했나? 어떤 여자가 차 안으로 어슬렁거리며 들어왔는데 요청을 받고는 내 옆 빈 좌석 팔걸이에 앉아 모두를 위해 “나는 차라리 젊어서 죽겠네”를 불러주었다. 분명 최근에 빅히트하고 있는 곡이리라. 나는 그녀의 엉덩이가 팔걸이 위로 포동포동하게 튀어나온 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나는 한 나라 정치계에서 제기랄 유일하게 충실한 남편인데, 그래서 내가 얻는 게 뭔가? 여기 객차 가득 술에 취한 미치광이들, 비뚤어진 하나님의 공동체들이 탄 놀이동산 차에 타서 오도가도 못하고 있다. 캐스트 그대로.
“어이, ‘가슴 아픈 산길을 아래로’ 어때?”
“‘창문 속 강아지!’”
“‘체인징 파트너스!’”
나는 그 담배 연기와 야단법석 속에 앉아 시큼하고 무거운 짐을 느끼며 더럼 대학에서 법률 서적을 내려다보는 것처럼 부서진 바지앞춤을 보며 구부정하게 앉아, 어떻게든 모든 일이 취소되길 바랐다. 오늘날 미국의 진정한 위기는 영혼의 위기라고 시무룩하게 생각했다. 셔츠 소맷단 단추를 잊고 안 채워 재킷 소매 안에 단단히 뭉쳐 있었다. 나는 일어서서 재킷을 벗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시선을 끌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너무 구역질이 났다. 짙은 담배연기, 소음, 낡은 좌석에서 나온 먼지가 나를 괴롭혔다. 건초열이 도질까 두려웠다. 나는 다시 머리를 뒤로 젖히고 홈부르크 챙 아래에서 로젠버그 사면 위원회에 보낸 편지의 확대인쇄물을 읽었다. 편지는 광고처럼 창문 위와 객차 양 끝에 붙어있었다…
관계자 제위에게. 내가 다만 하고 싶은 말은 정부가 저들이 얼마나 크게 죄를 지었는지 알고 있는데 왜 그렇게 많은 시간을 낭비하고 있느냐는 것이다!…전쟁을 일으키는 이들은 이런 인간 뱀과 같은 정부의 반역자들입니다. 우리 어리석은 정부가 그들을 풀어 우리 아들들에게 더 많은 지옥과 배반과 고문 같은 고통을 일으키기 전에 그들을 죽여 버리라는 뜻이다. 그들이 당신과 같은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당신은 이기적으로 그들이 석방되기를 원한다. 너희 배은망덕한 개들아 너희는 미국 전체를 거의 장악했다. 네 친구들이 석방된다면 나는 더 이상 미국인이 아니다.
딴 데로 정신 돌리는 일이 도움이 되었지만 그다지 크지는 않았다. 엉클 샘의 손가락이 불쑥 튀어나와 내 코앞에서 흔들리던 모습이 계속 보였다. 어딘가에서 유리잔이 깨졌고 여자가 비명을 질렀다.
사면으로 튼튼하게 통곡의 벽을 만들고, 싱싱 안에서 이 통곡의 벽의 큰 중앙에 이 귀염둥이 맘말라와 파팔라 로젠버그를 집어넣고, 통곡하고, 통곡하고 통곡하게 해라. 미국에 거주[하도록] 허락받은 대가로 유대인$들은 무엇을 합니까? 유대인은 예외 없이 스파이, 방해 공작원, “공산당원”, 좌익, 잠입자, 증오 선동을 일삼는 사람, 전반적인 말썽꾼이며, 말할 나위도 없는 강경 시온주의는 히틀러를 무슨 아마추어처럼 보이게 만든다.
이 쥐 2마리는 오래 전에 매달아야 했고, 당신들도 그래야 한다.
어느 선한 미국인
더 있었다. 편지들은 빌어먹을 객차 전체를 도배하다시피 발라져 있지만, 너무 기차 멀미가 심해 계속 읽을 수 없었다. 맙소사, 우리는 속도를 더 내고 있는 것 같았다. 지금은 산업지대가 첩첩이 들어차 있는 곳을 질주하고 있으니, 이미 뉴저지에 들었나 보았다. 얼마나 빠르게 내달리는지 빈민가와 공장은 거의 눈에 보이지 않고, 마치 그림책 페이지 넘기듯 휘리릭 스쳐 지났다! 어딘가에서 기적이 굉음을 지르고 바퀴가 찰칵찰칵거리다가 쿵 소리 났다, 나는 창문에 머리를 세게 부딪혔고 내 홈부르크 모자가 떨어졌다! 나는 모자를 집어 귀 위로 끌어당겼다. 차에 탄 술취한 사람들은 이제 목청이 떠나가라 열차-사고 노래를 부르고 있었지만, 노랫소리는 격렬하게 아슬아슬 달리는 룩어헤드, 네이버 스페셜 호의 천둥 같은 철커덕 펄커덕 소리에 완전히 잠겼다. 나는 선거운동 열차를 좋아하고 현관 앞에서나 떠드는 인물은 절대 아니지만 이건 해도 너무 했다! 언젠가 인용 사전에서 정치인은 누군가 “침착성의 괴물”이라고 불리는 사람이라고 내용을 읽은 적이 있었다. 글쎄, 우리는 이런 허식을 겉으로 걸치긴 해도, 속으로는 거의 견딜 수 없을 정도로 파란이 들끓었고, 지금 딱 내가 그랬는데, 겉으로도 지금은 그렇게 잘 해내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심하게 땀을 흘리고 축축하게 땀에 쩔어, 양손으로 좌석을 붙잡고 있었다. 사람은 자신의 신체적 질병에 도전장을 내밀고, 병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싸워야 하며, 긴장과 함께 살고 긴장으로 자극받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 내 평생의 신념이었다 — 사실 나는 언젠가 밥 태프트에게 처음 암에 걸렸을 때 그를 기운을 북돋으려고, 바로 이 말을 하였다 — 하지만 이제 임박한 재앙에 눈을 질끈 감고, 입은 바싹 마르고, 배가 꼬이듯 뒤틀리고, 아주 퀴퀴한 냄새를 풍기며,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다만, 나 그만두겠어! 그냥 여기서 나가게 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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