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530 부정기화물선 p315~321 Burma mandalay 그렇게 부정기화물선과의 만남은 끝이 났다. 그 기억은 내 존재의 가장 무기물적이고 고집스러운 본질과 마구 뒤섞인 강박적인 이미지들의 간결한 컬렉션을 형성하게 되었다. 꿈에 나타나는 빈도는 점점 드물어지고 있지만 완전히 사라지는 일은 없을 거라는 걸 잘 알았다. 깨어 있는 시간에는 특정 상황, 현실의 어떤 흔치 않은 배치가 그 출현과 닮은 구석이 있을 때마다 배가 떠오르곤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이미지가 숨어다니는 구석이 더 깊어지고, 더 은밀해져, 출현도 덜해졌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잊어간다. 아무리 우리에게 두텁고 살가웠더라도 우리 일들이란 게 위태로운 현재가 끊임없이 모방적으로 기만적으로 작용하여 낯설어진다. 이러한 이미지 중 하나가 굳건히 살아 버티겠다는 온통 악착.. 2024. 10. 16. 부정기화물선의 마지막 기항 309-315 코스타리카를 방문하고 니코야 만에서 소풍을 다녀온 지 몇 달 후, 파나마시티에서 나는 카예 교수회에서 내 시에 대해 강연해 달라고 초청을 받아 푸에르토리코행 비행기에 올랐다. 우리는 새벽에 출발했다. 공중에서 30분 지낸 후에 “환기 시스템의 사소한 오작동을 점검하기 위해” 비행기는 타고파나마 시티로 돌아와야 했다. 사실 엔진 하나가 고장 났고 다른 하나는 너무 무리를 받아 몹시 덜커덩거리던 가련한 737이 한시라도 더 이상 지탱할 수 있으리라는 가망이 없었던 것이 틀림없었다. 우리는 길게 두 시간 동안 정비사들이, 걸신들린 개미처럼 앞서 말한 터빈에서 부품을 빼냈다가 다시 끼우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확성기를 통해 사소한 오작동이 정상화되었으며 (왜 기술적인 문제에 대해 의심이 가는 이런 식의 언어를 즉.. 2024. 10. 12. 부정기 화물선의 마지막 귀향 p302-8 인생은 종종 그 결산 보고를 하는데, 이런 설명을 무시하지 않는 것이 좋다. 이들은 우리가 꿈과 환상의 세계에서 길을 잃고 우리의 운명이 참말로 존재하는 따뜻하고 평범한 시간의 연속으로 돌아갈 길을 못 찾는 법이 없도록 우리에게 제시된 일종의 청구서이다. 나는 이 교훈을 배운 게 핀란드에 다녀온 지, 그리고 그곳에서 가졌던 만남, 끈질기게 반복되는 악몽의 일부가 된 만남 이후 1년이 조금 지난 뒤였다. 나는 토론토에서 온 어느 기술자 대표단의 언론 고문으로 코스타리카에 머물고 있었다. 기술단은 어느 항구로 내륙으로 가는지 나로서는 기억 안 나는 송유관 건설을 점검하고 있었다. 산호세에서 만나 친해졌던 두 명의 친구가 평판이 수상쩍은 카바레들을 떠돌며 시끌벅쩍 요란하게 술을 마시던 중 푼타레나스 시 니코야.. 2024. 10. 8. 부정기 화물선의 마지막 기항 p298~302 나는 다양한 석유 회사들 사내 출판물 임원진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헬싱키에 가야 했다. 사실이지 정말 마지못해 가는 길이었다. 11월 말이었고 핀란드 수도의 일기 예보는 다소 암울했지만 시벨리우스 음악에 대한 흠모와 완전 잊혀진 노벨문학상 수상자 프란스 에밀 실란푀에의 잊을 수 없는 몇 페이지 작품에 대한 감탄은 핀란드 방문에 흥미를 돋우기에 넉넉했다. 또한 안개가 끼지 않는 날에는 에스트뇌스 반도의 맨 끄트머리에서 금빛 돔형 교회와 멋진 건물들로 이뤄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눈부신 풍경을 볼 수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이런 것들이 내가 경험한 겨울과는 생판 다른 끔찍한 겨울을 마주할 충분한 이유거리가 되었다. 실제로 영하 40도의 헬싱키는 범접할 수 없는 투명한 수정 속에 얼어붙은 것 같았다. 건물의 벽.. 2024. 10. 1. 살아남은 이미지 1장 pdf 전체 3장 중 1 장, 파란색 -불어본 참조 2024. 9. 29. 살아남은 이미지 p60~66 이 이중 거부를 통해 부르크하르트는 새로운 역사 서술 방식의 “제3의 길”에 들어섰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바르부르크는 나중에 부르크하르트가 했던 이런 기본적인 선택을 채택했다. (사실은 무엇보다 먼저 사실이 제기하는 기본적인 질문때문에 중요하니까) 사실을 넘어서는 문헌학자가 되고 (기본적인 질문은 무엇보다 먼저 역사에서 독특한 작품들에 적용될 가치가 있으니까) 체계를 넘어서는 철학자가 되었다. 그래서, 그런 일이 '제3의 길', 목적론이나 절대 비관론을 받아들이지 않고 모든 문화의 역사적 '존재'(다세인, 레븐)를, 말하자면 그 복잡성을 인정하는 일이 요구된다. 부르크하르트는 진정한 역사는 '연대기' 자체만큼이나 '사전 형성된 이론들'에서 파생된 ‘개념’에 의해서도 왜곡된다고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 2024. 9. 29. 살아남은 이미지 p55~ **우리의 디부크(dibbouk, 악령)을 쫓아낸 대제사장은 다름 아닌 에르빈 파노프스키이다. 하지만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니리라. 곰브리치 자신도 마지못해, 여러 세대에 걸쳐 미술사학자들에게 바르부르크의 작품에 “균형잡힌 시각을 적용”하여, 나흐레븐을 효력 정지시키는 방식으로 내쫓는 이론적 퇴마술을 확립한 것은 주로 파노프스키 때문이라고 인정했다. 파노프스키는 일찍이 1921년, 바르부르크가 ‘뒤러와 이탈리아 고고학’에 대해 강연한 지 불과 15년 후, 너무나도 비슷해 이전 출판물과 경쟁하지 않을 수 없는 제목의 논문 “뒤러와 고전 고고학”을 발표했다. 이 글에서 온갖 진부한 찬사의 표현에도 불구하고 ‘생존’이라는 곤란한 문제는 이미 ‘영향’의 한 문제로 자리를 내주었고 바르부르크의 작품에서 니.. 2024. 9. 29. 살아남은 이미지 p50~54 이제 우리는 ‘유령의 역사’로 짜인 이미지 역사의 역설들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생존, 지연, 귀환[revenances] 이 모든 것이 시대와 스타일의 가장 뚜렷한 발전에 참여한다. 바르부르크가 사망하기 1년 전인 1928년, 가장 인상적인 경구 중 하나, “어른들을 위한 유령 이야기”(Gespenstergeschichte fur ganz Erwachsene)는 그가 추구한 이미지 역사의 유형에 대한 나름의 정의였다. 하지만 이들 유령은 누구의 유령일까? 언제, 어디에서 온 것일까? 고고학적 정밀함과 멜랑콜리한 공감이 어우러진 바르부르크의 초상화에 대한 공경스러운 텍스트를 보면 이 유령들이 죽음 이후의 생존에 관한, 끈덕진 지속에 관한 문제라는 생각이 언뜻 처음에는 든다.사세티 가문(자신의.. 2024. 9. 29. 살아남은 이미지 p43~47 바르부르크가 1902년(초상화 연구에서)과 그 이전인 1893년(보티첼리 연구)로 접어든 것처럼, 피렌체 르네상스의 '왕도'를 따라 미술사에 진입한다는 것은 부르크하르트가 그 랜드마크 책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문명』 전반을 통해 구축한 바로 그 개념과 동조하는 입장을 취한다는 의미였다. 이 책의 주제와 논제는 끝없이 해설이 달렸다. 논객들은 이 책의 대담함과 방대한 범위, 그리고 '화려하고‘ 생동감 넘치는 움직임에 갈채를 보냈고, 어떤 이들은 매우 풍부하고 매우 다양한 역사적 자료를 통합하는 방식에 감탄하였다. 반면에 하나같이 유명한 모티브-중세와 르네상스의 대립, 으뜸 위치의 이탈리아, '개인의 발전' 등-모두 비판 없이 지나지도 않았다. 또한 모든 비평들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여전히 르네상스 개념에 .. 2024. 9. 28. 마크롤 가비에로의 모험 먼저 읽고- 아쉬운 마음에 부정기화물선 마지막 기항부터 해볼까 생각 중, 스페인어는 잘 몰라 영어-스페인어 참조 예정. 마크롤 가비에로 모험만 읽어도 되지만 뒤에만 읽을 수 없으니 일독을 먼저 권함. 2024. 9. 25. 이전 1 2 3 4 5 ··· 5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