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튼짓, 헛짓/Bridgeshead Revisited22 Brideshead revisited 12 2012-8-6 [5] ‘옥스퍼드가 대표적이야.’ 내가 말했다. ‘새해를 가을에 시작하다니.’ 모든 곳에, 모리돌, 자갈길, 잔디밭에 잎들이 떨어지고 있었고 대학 정원에 모닥불의 연기들이 강의 축축한 박무와 합쳐져 회색 벽들 사이를 떠다녔다. 창포는 반질한 발부리에 깔리고 하나 하나씩 사각 정원을 둘러 등불이 켜지면서 황금빛 불빛들은 흩어져 멀어지고, 새로 가운을 해 입은 새로운 인물들이 아치아래 황혼 사이를 방황하고 이제는 익숙한 종소리가 한 해의 기억들을 이야기하였다. 가을의 기색이 우리를 삼켰다. 마치 유월의 무성하던 시끌벅적함이 내 창문에서 향기를 뿜던 카네이션이 정원 구석마다 들끓고 있는, 축축한 나뭇잎에 자리를 내어주며 죽어버리듯이 우리를 삼켜버렸다. 학기의 첫 번째 일요일 오후였다. ‘나 딱.. 2023. 5. 14. Brideshead revisited 11 2012-8-5 저녁을 마친 후에 Brideshead가 말했다. ‘죄송하지만 한 30분간 세바스찬을 따로 만나야 되는데. 내일은 하루 종일 바쁠 것 같고, 품평회가 끝나면 바로 가야 되어서. 아버지가 서명해야 되는 서류가 한참 되어요. 세바스찬이 그걸 가지고 가서 설명을 드려야 하고. 코델리아, 넌 침대에 들 시간이다.’ ‘소화 먼저 시켜야지.’ 그녀가 말했다. ‘밤에 이렇게 잔뜩 먹는 일이 안 익숙하다고. 난 그럼 찰스하고 이야기할 테야.’ ‘찰스?’ 세바스찬이 말했다. ‘찰스? 라이더씨. 당신에게, 아이를 맡길 게요.’ ‘같이 가요. 찰스.’ 우리가 따로 되자 아이가 물었다. ‘정말 불가지론자세요?’ ‘너희 가족은 항상 종교에 관해서 이야기 하니?’ ‘항상은 아녜요. 그냥 자연스레 나온 주제에요. 안.. 2023. 5. 14. 브라이즈헤드 리비짓티드 10 2012-8-2 하루는 찬장에서 우리는 옻칠한 주석통을 찾았다. 안에는 쓸 만한 상태의 유화물감이 들어 있었다. ‘엄마가 저걸 한핸가 두해 전에 샀어. 누군가 엄마한테 그림으로 그려보려고 할 때만 세상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고 했거든. 우리는 그걸 두고 엄청 엄말 놀렸지. 엄마는 전혀 그림을 그릴 줄을 몰랐어. 아무리 물감통 안에서 밝은 색이었다고 해도, 엄마가 이걸 섞으면 어떻게 된 게 카키색이 되었거든.’ 팔레트 위에 각양각색으로 마르고, 질척한 물감얼룩들이 이를 여실히 드러내었다. ‘코델리아에게 항상 붓을 씻어 놓으라고 시켰지. 마침내 우리 모두 항의를 하고 엄마가 두손 들게 만들었어.’ 그 그림들 때문에 우리는 사무실을 꾸며야겠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사무실은 열주 쪽으로 열려 있는 작.. 2023. 5. 7. 브라이즈헤드를 되돌아보며 9 2012-7-30 아버지의 반격은 며칠 뒤에 뒤따랐다. 그는 나를 찾아서 ‘조킨스가 여전히 여기 있니?’라고 물었다. ‘아니요, 아버지. 물론 아녜요. 그는 저녁 먹으러 여기 온 거예요.’ ‘오, 나는 그가 우리집에 머물렀으면 했는데. 아주 다재다능한 젊은 친구야. 근데 너는 집에 저녁을 먹을 거냐?’ ‘예.’ ‘난 작은 디너 파티를 열 참이다. 네가 집에서 보내는 단조로운 저녁에 조금 다양성을 줄까하고. 아벨 부인이 아주 바쁘겠다고 생각하지? 아니. 하지만 우리 손님들은 까다로운 사람들이 아니야. 커스버트 경과 레이디 오엄-헤릭이 아마 중심이라고 할 수 있지. 그 뒤에는 약간의 음악회도 생각 중이야. 나는 너를 위해 몇몇 젊은 사람도 초대에 포함했다.’ 아버지 계획에 대한 불길한 예감은 실제로 닥치자 .. 2023. 5. 7. Brideshead revisited 8 2012-7-28 난 아침을 먹기 위해 빈 브로드 거리를 걸어 내려갔다. 일요일에 자주 발리올 대학 건너편의 다방(teashop)에서 식사를 해결했다. 공기는 주변 첨탑에서 울려나오는 종소리로 가득 찼다. 탁 트인 공간에 기다란 그림자를 드리는 태양은 밤의 공포들을 내쫓고 있었다. 다방은 도서관처럼 조용하였다. 발리올과 트리니티 대학에서 온, 침실 슬리퍼를 신은 몇몇 남자들이 홀로 앉아 있다가 내가 들어가자 고개를 들었다가 다시 일요일자 신문으로 시선을 돌렸다. 나는 스크램블드 에그와 젊은 시절 잠들지 못하는 밤을 지내면 따라오는 그런 열의를 갖고 쓰디 쓴 마말레이드를 먹었다. 나는 담배에 불을 붙이고 자리에 앉았다. 한편 발리올과 트리니티 학생들은 한 명 한 명 값을 치르고 슬리퍼를 질질 끌며 느릿느릿.. 2023. 5. 7. Brideshead Revisited 7 2012-7-19 나는 일찍부터 콜린스와 부활절 휴가를 지내기로 약조를 했었다. 세바스찬이 무슨 조짐이라도 보였으면 아무 죄책감도 없이 내 언약을 깨고 내 이전 친구를 친구 없이 버려두었겠지만, 아무 표식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콜린즈와 나는 라벤나(Ravenna, 이탈리아 북동부 도시)에서 경제적이며 유익한 몇 주를 같이 보냈다. 음산한 바람이 위대한 이들의 무덤 사이로 아드리아해에서 불어왔다. 더 따스한 계절을 겨냥해 꾸민 호텔방에서 나는 세바스찬에게 긴 편지를 보냈고 매일같이 그의 답장을 기다리며 우체국으로 들렀다. 각자 다른 곳에서 부친 편지가 두 통이 있었는데 거긴 그 자신에 대한 평범한 뉴스조차 들어있지 않았다. 동떨어진 판타지 같은 스타일로 편지를 썼기 때문에 (‘……엄마하고 수행하던 두 .. 2023. 5. 7. 브라이즈헤드 되돌아보며 6 2016 7-15 4시가 넘어서 우리는 헤어졌다. 안토니 블랑셰가 제일 먼저 갔다. 그는 우리에게 돌아가며 공식적이며 칭찬의 작별 인사를 고했다. 세바스찬에게 그는 ‘나는 피,피,핀 쿠션처럼 미늘이 잔뜩 달린 화살처럼 너한테 딱 달라붙어 있고 싶은데.’라고 말했다. 그리고 나에게는 ‘세바스찬이 당신을 발견하다니 아주 멋진 일이라고 생각해요. 어디 숨어 있었어요? 당신 굴까지 파고 들어가서 늙은 담비처럼 당신을 모,몰아내야겠어요.’라고 말했다. 다른 사람들도 그를 따라 금방 떠났다. 나는 그들과 함께 가기 위해 일어났지만 세바스찬이 말렸다. ‘코엥트로 좀 더 들지.’ 그래서 나는 머물렀고 조금 지나자 그가 ‘식물원(1621년에 설립된 오래된 옥스퍼드대학 식물원)에 가야겠어.’라는 말을 꺼냈다. ‘왜?’ ‘.. 2023. 5. 7. Brideshead revisited 5 2016-6-12 ‘그래, 나로서도 관대한 일이다. 하지만 너도 알겠지만 이건 다 자본에서 나오는 것이야. 이번 기회에 너에게 충고를 좀 해야겠구나. 나는 네 사촌 알프레드 말고는 한 번도 조언을 들은 적이 없었다. 내가 올라가기 전 여름에 네 사촌 알프레드가 내게 특별히 충고를 해주려고 버톤까지 직접 온 적이 있다는 이야기 했었니? 그 내용이 무엇이었는지 혹 아느냐? 그가 그러더라. 네드, 네게 꼭 간청할 일이 있다. 학기 중에는 일요일에 항상 실크해트를 쓰거라. 다른 어떤 것보다 바로 그걸로 사람을 판단을 한단. 이렇게. 그리고 이것도 아느냐?’ 아버지는 크게 코를 훌쩍이며 말을 이었다. ‘난 항상 그렇게 했단다. 그런 사람들도 있었지만 안 쓰는 사람도 있었지. 나는 그 사람들 사이에 차이점을 모르겠.. 2023. 5. 7. 브라이즈헤드를 되돌아보며 04 2012-6-7 BOOK ONE Et in Acardia Ego (나조차도 아르카디아(목가적 이상향)에 있다. 라틴어) [1] ‘나 여기 와본 적 있어.’ 내가 말했다. 나는 전에 거기에 있었다. 세바스찬과 처음으로 20년도 더 전에 유월의 어느 구름 없는 날에 도랑은 터리풀로 뜨물 같은 빛깔에 공기는 여름 내음으로 진하던 날. 이상한 광채로 가득한 날이었다. 거기에 아주 자주, 또 온갖 여러 감정으로 드나들었지만 가장 최근의 방문인 지금 내 마음이 돌아가고 있는 곳은 그 첫 번째 방문이었다. 그날, 역시 나는 내 운명을 알지 못한 채 왔었다. 그때가 ‘여덟째 주중’이었다. (Eights Week: 옥스퍼드 대학 간 보트 경주가 열리는 4일간, 삼위일체 학기 다섯 번째 주에 열림) 옥스퍼드는 지금은, 리.. 2023. 5. 7. 브라이즈헤드를 되돌아보며 03 2012-6-4 그리고 그는 그의 공책을 참조해 가며 읽었다. ‘명령.’ ‘정보. 부대는 이제 장소 A와 장소 B 사이 수송 중에 있다. 이는 C의 메이저 L이며 적으로부터 폭격과 가스공격이 받기 쉬운 상태이다.’ ‘목적. 나는 장소 B에 도달하려 한다.’ ‘방법. 기차는 목적지에 약 2315시에 도달할 예정이며……’ 등등등. 가시는 ‘업무’라는 제호 아래 마지막에 도사리고 있었다. ‘C’ 중대, 소대급 이하 인원은 측선 도달시 기차에서 짐을 내려 삼삼 톤급 운반차에 모든 비축품을 새로운 막사 내 부대 임시저장소로 이송가능 하도록 조처한다. 일은 완수 때까지 지속한다. 남은 소대는 임시저장소와 막사 지역의 주변 보초 일을 맡도록 한다. ‘질문 있나?’ ‘특별임무반에 코코아 배급을 받을 수 있습니까?’ ‘.. 2023. 5. 7. 이전 1 2 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