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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튼짓, 헛짓139

산 미켈레 이야기 1 2012-8-15 산 미켈레 이야기. I 젊은 시절. 나는 작은 해안 쪽으로 향하고 있는 소렌토 돛단배에서 발딱 일어섰다. 소년들이 떼 지어 뒤집어 놓은 보트 사이에서 놀거나 파도 사이로 구릿빛 몸을 반짝이며 수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붉은 프리지어 모자(스머프 모자 같은 모자)를 쓴 늙은 어부들이 보트 창고 밖에 앉아서 그물을 손질하고 있었다. 승선장 맞은 편에는 등에 안장을 얹은 대여섯 마리 당나귀들이 굴레에 꽃이 다발로 둘려져 서있었고 그 주위로 땋은 머리와 어깨에 두른 붉은 손수건 사이에 은색 스파델라(spadella?)가 뾰족 내밀고 있는 그만큼의 소녀들이 시끄럽게 재잘대고 노래를 부부르고 있었다. 나를 카프리까지 데려다 줄 당나귀 이름은 로지나였고 당나귀를 끄는 소녀의 이름은 조야였다. 그녀.. 2023. 5. 5.
BMH 17 2019-12-10 3 트럼 4 창백해, 너무 창백해 그가 계단 옆에 서 있는데 유난히 우아해 보이는 한 남자가 다가왔다. 이 남자 어찌나 우아한지, 살아생전에 그렇게 우아한 모습은 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그는 여기, 베스터반호프, 동부로 가는 ET-463 예뇌 휘스커 도시 간 고속철의 여느 연결 편에서는 그런 면모는 특히나 기대하지 못하던 바였다. 그는 이 철도회사에서 어언 삼십일 년을 근무하고 있는 중이었고, 그러다 갑자기, 그 삼십일 년 후에, 거기 몇 걸음 떨어져 그렇게 우아한 남자가, 오늘 아침에 미리 누가 이런 일 있을 것이라고 말해줬더라도, 내가 믿지를 못했을 것이다. 무슨 이유로 아침에 고속철도 차량에 이러이러한 여행객이 있으리라는 말을 그가 믿겠는가, 그 남자 종복은 그렇게, 어쩜 그렇.. 2023. 5. 4.
Baron Wenckheim's homecoming 6 2019-12-5 하지만 그녀는 말은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니 그녀와 기자들 사이에 어떤 대화도 없는 것 같았다. 하긴 지금까진 서로 그렇게 많이 대화를 한 것도 아니긴 했다. 다만 어젯밤 짧은 첫 번째 인터뷰가 있었고, 그리고 오늘 아침-어젯밤 따로따로 차를 타고 도착하고, 어떻게 이 일이 전개될지 그냥 모니터링하고 있던 그 센세이션과는 대조적으로-오늘 아침, 더욱 짧은, 두 번째 인터뷰가 있긴 있었다. 교수는 자신 오두막의 넝마들과 빗장들을 지나 다가오는 차 소리를 명확하게 들었지만 그게 다였다. 이후로는 아무 것도 들리지 않았다. 그들은 계속 여자애에게 질문을 해대지만 얻는 게 없었다. 그녀는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기자들을 듣지도 보지도 못한 양 행동했다. 그래서 기껏해야-당분간-도시의 거주자들이.. 2023. 5. 4.
벤크하임 남작의 귀향 20109 -12-4 그는 창문으로 건너가고 싶은 마음이 없어, 그저 제법 떨어진 거리에서 지켜보았다. 거기서 그가 사이를 둔 그깟 몇 걸음이 보호책이라도 되는 듯이, 하지만 물론 그는 어쨌거나 쳐다보았다, 아니 더욱 정확히는 그의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흘러들어오는 소위 떠들썩한 소리로, 그냥 저 밖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 밖으로 쫑긋 귀를 세워보려고 했지만, 하지만 딱 그 순간에 아무 것도 흘러드는 소리가 없어, 그렇게 종합을 해보면, 침묵만 이어진다는 것을 미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렇게 어느 정도 지날 때까지, 지금은 한참 되게 침묵이 이어지고 있었다. 어제 이후로 그가 속을 눌러 참아야만 했던 그 모든 일 후에 그는 진짜 거기로 건너가서 헝가로셀 폴리스티렌(스티로폼) 단열막을 제거하고, .. 2023. 5. 4.
Lost Classics 해롤드 이야기 2013-11-9 에드문드 화이트, 해롤드 이야기-테리 앤드류스 이 책은 내가 읽은 가장 기이한 책 중의 하나이다. 아마도 그전에도 이후로도 결코 동시에 등장하지 않는 요소가 결합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1974년 처음 나왔을 때 작은 센세이션을 일으켰고 그런 뒤 즉시 가라앉아 시야에서 사라졌으며, 내가 아는 한에서 재판되지 않았다. 분명 지금은 절판되었다. ‘테리 앤드류스’는 분명 필명에 한번은 그의 진짜 이름을 듣기는 했지만 (사실 그 당시의 유명한 동화작가였는데,) 이를 잊어먹었고 돌아가신 지도 한참 되었으리라 알고 있다. 소설은 1인칭 서술자가 이야기를 한다. 이름은 테리이고 뉴욕 동화책 작가로 ‘해롤드 이야기’를 써서 바로 명작의 반열에 올랐으며, 책은 모인 어린아이들에게 자주 읽어준다. 해.. 2023. 5. 1.
Lost classics_Treatise on style-Louis Aragon 2013-9-8 Darren Wershler-Henry Treatise on style-Louis Aragon “프랑스 군대 전부 다 집이치우라 그래.” 내가 저 구절, 루이 아라공의 문체론의 맨 마지막 문장을 읽을 때마다 내 시꺼멓고 음흉한 소심한 심장의 주름들이 뭉클해진다. 물론 상당히 많은 필부들이 프랑스 군대에 적어도 아쟁쿠르 전쟁이후에 집어치우라고 해대는 판국이니 1928년이라고 해도 딱히 새로울 것 없는 감상이다. 하지만 문체론의 전후맥락에서 (그 해에는 traite du style에 등장했겠지만) 따져보면, 전술한 구절은 빗발치는 문학적인 면도날과 다름없는 책에서 단순히 마지막 기습공격이다. 1927년에 완성되었으나, 이 논문은 그 다음 해가 될 때까지 출판되지 못했다. 앙드레 지드, 폴 발.. 2023. 5. 1.
Lost classics 48 2013-7-03 카산드라 파이버스 죽은 갈매기-조지 바커 Cassandra Pybus The Dead Seagull-George Barker 내가 처음 『그랜드 센트럴 역에 주저앉아 나는 울었다』를 1967년에 읽고 완전 넋이 나갔다. 나는 막 스무살을 넘기고. “치명적으로 사랑의 씨앗으로 꽂힌 세상의 온갖 슬픔을 바라보는 눈을 가진 상처로 가득 차 있는” 엘리자베스 스마트처럼 열정의 순교자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고통을 안기는 사랑에 대한 그녀의 시각은 직접적으로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조지 바커에 관해서는, 그녀가 시를 읽은 뒤 강박적으로 추적을 하고 유혹을 했던 시인에 대해서는 나는 아무 것도 몰랐다. 할인 가격의 책방에서 헐값으로 파는 책 더미를 훑어보다가 하루는 얇은 책자의 책에 그의 이름.. 2023. 5. 1.
Lost classics 46 2013-6-8 Michael Ondaatje Bringing Tony Home-Tissa Abeysekara 마이클 온다체 『토니를 집에 데려오다』 -티사 아베이세케라 내가 처음 『토니를 집에 데려오다』를 읽었을 때, 내가 이미 잘 알던, 어린 시절의 책을 우연히 만난 듯한 느낌이었다. 이는 물론 내 어린 시절을 마주 치는 책이기도 하였으며, 그 기이하고 부풀린 묘사의 감각(“여자가 집안으로 사라지자 그녀가 증기롤러가 그녀 위로 눌러 지나간 것처럼 몹시도 얇고 납작하게 보였다.”)과 아주 먼 거리를 날라야만 하는 너무 무거운 단지처럼 사물들이 확대된 느낌들을 불러일으켰다. 책은 당신과 당신의 가장 가까운 이웃 혹은 친척들 간의 수천 가지 번잡들로, 이 세상에 혼자되었다는 맛 좋은 슬픔 느낌을 지녔다. .. 2023. 5. 1.
Lost classics 37 2013 5-23 Alan Lightman Far away and Long Ago-W.H. Hudson 앨런 라이트먼 저 멀리, 옛적에 -윌리엄 H 허드슨 (내 마음의 팜파스) 꽤나 오래 전에 amazon.com이 없던 시절에, W.H 허드슨의 아주 예전에 절판된 특정 출판문을 찾으려는 마지막 시도로 오리건 주 포틀랜드에 있는 파월의 책가게로 나라를 가로지르는 여행을 했다. 나는 이미 허드슨의 더욱 유명한 소설, 수년 동안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던 남미의 우림지에서 일어나는 로맨스에 관한 엄청나게 슬픈 소설인, 『녹색의 장원』의 열렬한 숭배자였다. 파월의 중고 책방에 에이커 에이커를 거닌 후에 나는 작은 빈터에 들어섰고, 관련 서가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거기서, 내가 바라마지 않던 목적의 책의 다섯 판.. 2023. 5. 1.
The saddest pleasure Lost classics 31 2013-5-18 Pico Iyer The Saddest Pleasure –Moritz Thomsen 피코 아이어 『슬프디슬픈 즐거움』-모리츠 톰슨 이 책은 클래식, 고전 명작은 아니다. 나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친 책도 아니지만. 최근 들어 점점 더 모리츠 톰슨의 『슬프디슬픈 즐거움』이 새삼스레 머리를 떠나지 않고 있다. 마지막으로 본 게 미네소타 세인트 폴에 있는 그레이울프 프레스에서 갓 발행한 것이었다. 나는 항상 여행 책은 삶과 자신에 대한 여행이어야 하며 그 둘을 되살리고 희망을 불어넣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여행하는 일은 다시 사는 법을 배우는 일이니까. 하지만 톰슨의 심기 뒤틀리고 동화하기 힘든 책은 내게 충격이었고 사실상 소멸로의 여행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에 편.. 2023. 4. 30.